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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기억이 나십니까?????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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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빠 머리 염색을 도우며
정지선(jungogh) 기자
"지선아 아빠 염색 좀 하자."
늘 하는 일이지만 아직도 아빠는 딸에게 염색을 부탁하는 것이 겸연쩍으신가 보다. 푸른 러닝셔츠를 입고 염색을 기다리는 아빠의 뒷모습이 왠일인지 허전하고 슬프다.
난 곧 염색약을 들고 아빠의 곁으로 가서 능숙하게 두 종류의 약을 적절히 섞으며 염색할 준비를 마친다. 아빠의 힘없는 머리카락을 빗으로 빗어 넘기며 나는 10여전의 기억으로 돌아간다.
족집게.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물건이 되어버린 이것은 불과 10년 전만해도 내 용돈벌이에 사용되는 아주 중요한 도구였다. 아빠는 흰 머리가 날 때쯤 되면 나를 부르곤 하셨다. 항상 "용돈 좀 벌어볼 거냐"라고 하시고는 기세도 등등하게 내가 흰 머리를 뽑기에 가장 편안한 자세를 잡으시는 것이다.
ⓒ2005 정지선
지금이야 미안하다는 듯이 염색 좀 해달라고 하시지만 말이다. 그것도 내가 지금 시간이 되는지, 무엇을 하고 있던 건 아닌지 꼭 확인하시면서. 그러면 나는 족집게와 휴지 한 장을 들고 아빠의 머리맡에 앉는다. 검은 머리카락들 사이에 드문드문 나 있는 흰 머리를 족집게로 정확하게 집어 당긴다. 그리고 외친다.
"10원"
결코 한 개, 두 개라고 하지 않는다. 왜 그랬는지는 모를 일이지만. 아마도 두 가지 색의 머리카락 중 하나를 골라내는 그 지루한 작업을 함에 있어서 그 힘찬 외침은 파이팅의 의미였을 것이다. 조금만 더 뽑으면 500원이다. 좀만 더 뽑아서 1000원을 만들까?
아빠의 머리카락 속을 헤집으며 나는 숫자 헤아리기에 여념이 없었다. 내가 지금 수를 계산하는데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뛰어난 것은 바로 이것 덕분이리라. 10원, 20원…. 도저히 1000단위로는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셈은 어느덧 1000단위를 넘고 때로는 1200의 단위도 넘는다. 10원 단위도 정확하게 계산한 그 귀중한 돈을 받아 들고 나는 얼마나 흐뭇해 했는지 모른다.
우리 집엔 그 당시 장가를 가지 않고 우리와 같이 살던 삼촌이 있었다. 가끔 삼촌의 흰 머리도 뽑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강시비디오를 실컷 볼 수 있었다. 왜냐하면 삼촌의 흰 머리 하나 당 가격은 50원 이상을 호가했기 때문이다. 삼촌이 부르지 않아도 나는 괜히 삼촌방으로 건너가서는 "삼촌 흰 머리 좀 뽑아야겠다. 아주 하얀데?" 하며 능청을 떨었다.
그러면 삼촌의 흰 머리를 뽑을 때가 안 되었어도 무조건 옆으로 누우며 웃으신다. 그리고는 네 맘대로 해라라는 표정으로 눈을 감고 미소를 지으신다. 아예 족집게와 휴지를 들고 들어가니 지금 흰 머리가 없다 한들 아니, 대머리라 한들 별 수 없었겠지만.
하루는 삼촌이 기분이 좋으셨는지 흰 머리 하나 당 500원을 주시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. 뽑아봐야 얼마나 뽑겠냐는 생각이셨던 것 같다. 하지만 나는 그 가격에 이미 흥분이 될 대로 되어 없는 흰 머리도 만들어 낼 판이었다. 삼촌이 잠든 사이에 나는 거친 머리 속을 샅샅이 뒤져 (1cm도 안 되는 흰 머리들까지) 1만5000원 상당의 돈을 챙겼던 것으로 기억된다.
그 당시에 1만5000원이면 아이스크림이 몇 개이고 또 강시비디오가 몇 개인가. 그날 나는 모르긴 몰라도 무지하게 행복했을 것이다. 삼촌의 동그래진 눈과 나의 흐뭇한 웃음이 아직도 내 머리 속을 흘러간다.
일본으로 가신 삼촌을 못 뵌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. 얼마나 늙으셨을까. 머리는 얼마나 하얘지셨을까. 나는 아직도 삼촌이 족집게로 흰 머리를 뽑으실 거라고 믿는다.
다시 우리 아빠의 얘기로 돌아가면, 흰 머리 한 개당 500원은 아빠에겐 그야말로 도둑놈 심보 소리 들을 만한 일이었다. 물가가 올랐으니 가격을 올려주신다는 게 개 당 20원이었으니…. 열심히 작업을 하다가 실수로 검은 머리라도 뽑았다 하면 아빠는 귀신같이, "검은 머리지?"하셨다. 난 그저 신기한 마음에 거짓말을 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"엇, 어떻게 알았어?" 한다. 아빠는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다. "흰 머리는 죽은 머리라서 아프지가 않다"고.
아직도 그때 아빠의 머리 냄새를 기억한다. 가만히 앉아서 머리카락 뽑기에 집중을 하고 있으면 항상 같은 냄새가 났다. 지금은 그 냄새가 아니다. 달라진 건 냄새만이 아니지만….
아빠의 머리를 염색하면서 생각해본다. '지금 아빠의 흰 머리를 족집게로 뽑는다면 어떨까' 하고 말이다. 그리고 이내 슬퍼진다. 만약 지금 10여년 전 그때처럼 족집게로 "10원, 20원" 외치며 천진난만하게 흰 머리들을 뽑았다가는 내 지갑이 두툼해 지는 것도, 아빠가 대머리가 되는 것도 시간 문제일테니…. 내가 알고 있던 염색약은 멋을 위해 머리색깔을 바꿀 때 쓰는 것인데 말이다.
"다 했어. 잘 됐네!"
추억 속으로 돌아가 족집게로 아빠의 머리를 염색하고 돌아온 내가 외친다.
"그래, 수고했다."
무뚝뚝한 아빠는 염색으로 인해 착 달라붙은 머리를 하고 정중하게 말한다. 그 작은 족집게로 흰 머리를 없앨 수 있었을 때가 그리워진다. 지금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아빠의 흰 머리가 그때만큼 적어진다면 돈을 내면서라도 신나게 흰 머리를 뽑을 텐데 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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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:
서일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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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5-05-06 13:58:0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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